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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한국어 책에서 보는 한국의 삶

  • 이미향(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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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 한국어 교실에서 가르치는 말도 세상과 삶의 변화에 따른다.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이 의사소통에 있는 것인 만큼, 외국어 책에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들이 우선적으로 선정된다. 그러다 보면 ‘책’이 그 말을 쓰는 이들의 세상살이를 그대로 비추게 된다. 한 예로, 오래전 한국어 책에 나오던 ‘다방’이 ‘커피숍’으로 바뀌더니, 요즘에는 다시 ‘카페’로 바뀌어 있다. 젊은이들이 다방이라고 말하지 않게 된 어느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커피숍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한다. ‘빨리빨리 문화’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는 변화가 크고 역동적인 사회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그러한 변화가 한국어 책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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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 이 구내 서점에서 공책도 살 수 있읍니까?
점원: 없읍니다. 공책은 저 문방구점에서 팔고 있읍니다.
사강: 서점에서는 책만 파는군요.
점원: 그렇습니다. 무슨 책이든지 다 사실 수 있읍니다.
사강: 그러면 프랑스 책도 살 수 있읍니까?
점원: 그럼요. 주문하시면 사실 수 있읍니다.
사강: 오늘 주문하면 언제쯤 책이 옵니까?
점원: 오늘 주문하시면 두 달 후에는 책이 옵니다.

『한국어 1』,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1979년)

1979년에 발행된 한국어 책에서 구내 서점의 점원과 손님이 주고받는 말을 보자.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서점에서는 문구류를 팔지 않고, 외국책은 주문해야만 살 수 있으며, 프랑스 책은 두 달이 걸려야 도착한다고 한다. 다른 단원을 조금 더 살펴보면, 열람증을 만들기 위해 신청서 용지를 쓰고 사진 한 장을 가져오라는 도서관 풍경도 있다. 집에 초대할 친구에게 “약도를 그려 줄게요.”라는 대학생도 보이고, “정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라고 공손하게 말하는 전화기 너머 누군가도 있다.

바나나 값이 귤의 세 배 이상이라고 탄식하는 외국인에게 “귤은 제주도에서 나지만, 바나나는 외국에서 수입합니다.”라고 설명하는 가게 주인도 나온다. 빵집에서 한 대학생이 사 들고 나오는 ‘사라다빵’, 제일 좋은 담배라는 ‘거북선’이 한 갑에 300원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기성복이 보편화되지 않은 때에 손님이 ‘가을에 입을 투피스 한 벌 맞추려고 한다’고 하자 양장점 주인은 옷감을 가지고 왔느냐고 묻는다. “오늘 치수를 재시고, 사흘 뒤에 오셔서 가봉하세요. 그러면 그 다음 다음날 찾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말에서, 투피스 하나를 손에 들려면 일주일을 보내야 할 것을 짐작해 본다.

어디 1970년대의 생활상만이 녹아 있을까? 130년도 더 된, 외국인 선교사가 쓴 한국어 책을 하나 더 보자. 외국인 선교사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이전에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운 경험이 있는 학습자였다. 그들은 한국어 책에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이방인으로서 한국에 사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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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을 배워 보건대 대단히 어려울 듯하오.
조선말을 잘하는 외국 사람이 적소.
정부에서 시골에 외국 사람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오.
미국은 없는 것 없소.
영어를 알면 천하에 다녀도 말을 통할 것이니…
미국에 가고 싶소.

『한영문법』, H. G. Underwood(1890년)
* 예문은 필자가 현대어로 바꾼 것임.

‘그 나라’에 대한 특정 지식은 언어를 통해 배운다. 그러므로 언어 교육의 모든 과정에는 당대의 문화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교재란 원래 보수적이라 사회의 변화를 바로 반영하지 못한다. 현실성을 기준으로 지금 한국어 책을 들여다보면 가끔은 가르쳐야 하는 말인지 망설일 일이 생긴다. “이거 모두 얼마예요?”, “깎아 주세요.” 등이 그러하다. 작은 편의점에서도 눈으로 가격을 확인할 수 있고, 한국의 결제 시스템에서 대부분 흥정할 곳이 없어진 탓이다. 전자 잠금장치가 대부분인 한국에서 “열쇠를 잃어버려서 집에 못 들어갔어요.”라는 말도 해 본 지 오래된 것 같다. 길을 검색하는 세상에서 약도를 읽을 일도, “몇 번 버스를 타야 해요?”라고 말할 일도 없다. 배달 앱을 쓰면서부터 전화로 주문하는 말도 직접 해 볼 일이 없고, 기차표도 말로 사지 않는다. 기술의 혁신으로 의사소통의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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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여 “어떻게 가야 해요?”, “몇 번 버스를 타야 해요?”와 같은 말을 안 가르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한 말을 쓰지 않는다면 그 대답인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도, 말을 걸 때 쓰는 ‘저기요, 실례합니다’도 배울 필요가 없는 셈이다. 말이란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길인데, 정보를 주고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친교의 말들이 있다.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가는 말은 사람과 부대끼면서 익히는 수밖에 없다.

다시 43년 전 책을 펼쳐 본다. 격려와 칭찬을 들은 한 20대 대학생이 겸손을 표현하는데,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와 같이 말한다. 지금 한국어 책에 나온 말과 비교해 보면 같은 20대라고 상상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바뀐다는 것은 물질문화만이 아니라 소통 방식의 변화도 함의한다. 새로운 문물과 기술이 사회를 바꾸더라도 그때 곁에 있는 사람과 통할 소통법은 배워야만 한다. 그러면 한국어 책에는 어떤 내용이 어디까지 담겨 있어야 할까? 130년 전 외국인 교육자처럼, 나도 한국어 교실을 들어서며 드는 고민을 털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