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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원 한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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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학술단체는?’ 정답은 한글학회이다. 한글날 제정(1926년), 한글맞춤법 제정(1933년), 『조선말 큰사전』 편찬(1947년~1957년) 등 우리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겨 온 학술단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쉼표, 마침표.>>에서는 올해 한글학회장으로 취임한 김주원 한글학회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쉼표, 마침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국립국어원 소식지 독자 여러분께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주원

 안녕하세요. 한글학회장 김주원입니다. 저는 지난 20여 년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알타이언어학과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왔습니다. 2000년부터는 사라져 가는 알타이언어 현지 조사를 많이 했어요. 훈민정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훈민정음 해례에 ‘설축(舌縮)’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그 용어를 알타이언어의 모음조화와 연관시켜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습니다. 2013년에는 ‘훈민정음,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라는 책을 써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훈민정음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을 담은 책입니다.

<<쉼표, 마침표.>>

한국인에게 한글은 자랑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한글과 훈민정음에 관해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여러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훈민정음을 둘러싼 여러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김주원

 한글이 창제되었을 당시 한글의 명칭이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즉 훈민정음은 글자의 명칭입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훈민정음은 세계기록유산이다.’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훈민정음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한글은 세계기록유산이다.’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죠. 이와 관련된 말이나 글에서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분명히 구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글은 가장 과학적인 언어이다.’라고 말한다면 이상한 말이 되죠.

<<쉼표, 마침표.>>

훈민정음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주원

 먼저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첫머리에 있는 세종임금의 서문을 보면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이 자기 생각을 글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 누구나 쉽게 익히고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라는 내용인데요. 세종임금의 애민정신이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향하는 목적은 결국 백성 누구나 뜻을 잘 나타내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한다는 거죠. 그 외에 글자를 이해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부수적 효과도 많이 있겠죠.
 창제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처음부터 닿소리 즉 자음과 홀소리 즉 모음을 구별하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창제 원리는 닿소리의 경우 기본 다섯 글자(ㄱ, ㄴ, ㅁ, ㅅ, ㅇ)를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고, 다른 글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하여 가획, 즉 획을 더하여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홀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세 가지(삼재) 즉 ‘하늘 (ㆍ), 땅 (ㅡ), 사람(ㅣ)’을 기본 글자로 만들고 이 글자들을 조합하여 나머지 모음자를 만들었죠.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이들 낱글자를 실제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즉 운용 원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밝히고 있는데 ‘종성자는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자를 다시 쓴다’라거나 ‘연서 즉 이어쓰기’, ‘병서 즉 나란히 쓰기’로 필요한 글자를 더 만들고, 이렇게 만든 초성, 중성, 종성의 각 글자를 합쳐서 한 음절의 글자로 쓰는 방법이라든지, 점을 찍어서 소리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즉 한글은 우리 겨레의 자랑일 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언어학자들이 그 과학성과 독창성에 감탄하는 글자예요.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글의 표기 수단으로서 장점과 단점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여 한글을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요.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로 백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요. 아직 한글학회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주원

 아마 주시경 선생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라고 말씀하신 분입니다. 주시경 선생께서는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국운이 기울어 가던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를 창립하셨습니다. 그런데 1910년에 한일합병이 이루어지면서 국어라는 말이 일본어를 뜻하게 되었죠. 따라서 ‘국어연구학회’에서 ‘배달말글몯음(조선언문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가 1913년에 다시 ‘한글모’로 바꾸고, 그 이후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쳐 활동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탄압으로 모진 수난을 겪어야 했어요. 당시 조선어학회원들은 우리말의 어문규범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고 있었습니다. 일제는 한글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던 조선어학회를 눈엣가시처럼 여겨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하기 위해 술책을 꾸밉니다. 이를 가리켜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해요. 회원 33명을 검거하여 고문을 가했고 이들 중 이윤재 선생과 한징 선생은 감옥에서 삶을 마감하셨고, 이극로, 최현배 선생 등 네 명은 수감 생활 끝에 8·15 광복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분들의 노고와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글학회는 존재할 수 없죠.
 조선어학회는 광복 후 다시 결성되어 1949년에는 명칭을 ‘한글학회’로 개칭하여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백여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회예요. 한글학회는 역사가 긴 만큼 성과도 많은데요. 몇 가지만 추려서 이야기하자면, 1933년에 한글맞춤법을 제정해서 우리 말글의 규범을 확립했고, 1947년에서 1957년까지 최초의 한국어 대사전인 『조선말 큰사전』을 펴내었습니다. 또한 ‘한글날’을 제정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정부의 어문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대안을 갖고 비판을 가했습니다. 또한 수백 차례의 국어학 연구발표회를 열었고, 대규모의 국제대회도 수차례 개최한 바 있습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북한의 언어 및 언어학 연구,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에도 힘을 기울였어요.
 또한 정기간행물로는 1932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학, 언어학 학술지인 『한글』을 비롯하여 『문학 한글』, 『교육 한글』, 『한글 새소식』 등을 꾸준히 발행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글학회는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국어운동을 실천하는 겨레 문화의 큰 별이라고 할 수 있죠.

<<쉼표, 마침표.>>

『조선말 큰사전』, 『우리 토박이말 사전』, 『깁고 더한 쉬운 말 사전』 등 한국어 사전의 편찬과 간행 활동이 눈에 띕니다.

김주원

 먼저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암울한 시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1910년에 국권을 빼앗기면서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되죠. 우리 문화와 언어도 존속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말과 글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 문화의 원동력임을 절실히 느끼게 된 선각자들이 국어문법 연구와 사전 편찬을 시도했어요. 즉 사전이 단순히 어휘를 모은다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적 자각에 의해서 민족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특히 『조선말 큰사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나요? 주시경 선생 등이 1910년부터 조선광문회에서 ‘말모이’라는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여러 상황과 맞물려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고, 이후 1929년에 조선어사전 편찬회가 발족되어 사전 편찬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전의 편찬을 위해서는 어문규범이 마련되어 있어야 해요. 따라서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1940년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등이 완성되면서 사전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1942년 일제는 사전 편찬 작업이 불순한 독립운동이라고 트집을 잡고, 사전 편찬과 관련된 사람을 모두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어요. 앞서 말한 바 있는 ‘조선어학회 사건’이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약 13년간 작업했던 사전 원고가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습니다. 이 원고는 해방 후에 경성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어요. 정말 기적이라고 할 만한 놀라운 일이죠.
 『조선말 큰사전』 원고엔 십수 년에 걸친 집필, 수정, 교열 작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작업에 박차를 가하여 1947년, 1949년에 『조선말 큰사전』 제1, 2권이 차례로 나왔고, 6·25 전쟁을 거친 이후에는 천신만고 끝에 제6권까지 간행하여 완간했습니다. 실로 우리 민족이 근대에 겪은 수난을 고스란히 함께 겪은 사전이에요. 이처럼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을 통해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어 대사전이 탄생했습니다. 이 사전은 우리말 통일 사업의 시작점이자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문화사와 독립운동사의 매우 중요한 자료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 말살 정책에 맞서 한글과 한국어를 보존하고자 했던 국어학자들의 염원이 녹아 있는 소중한 자료예요. ‘『조선말 큰사전』 원고’와 그 바탕이 된 ‘말모이 원고’는 지난 2020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조선말 큰사전』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한글학회 누리집에서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어요.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는 지난해 ‘바른한국어인증원’을 설립해 정부 공공문서의 우리말 사용 실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각종 보도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외래어 사용 수준이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어떤가요?

김주원

 말씀하신 대로 공공기관의 외래어 사용 남용이 심각한 현실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예요. 따라서 국가나 정부 기관, 그리고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바른 소리, 올바른 한글을 사용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외래어, 외국어를 갈수록 무분별하게 쓰고 있어요.
 우리가 자주 접하는 공공기관과 행정기관의 업무내용이나 보도자료에는 ‘벤처’, ‘스타트업’, ‘브리핑’, ‘로컬푸드’, ‘바우처’ ‘멘토’, ‘멘티’, ‘멘토링’ 등 난해한 정책용어가 많습니다. 코로나 감염증이 유행한 이후에는 ‘위드 코로나’, ‘부스터 샷’, ‘언택트’ 등 외래어와 국적 불명의 언어들이 더욱 빠르게 생산되고 있어요. 이러한 외래어, 외국어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정보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생기기도 합니다. 외국어에 취약한 노인 계층이 주로 해당되죠. 그런데 이건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젊은이 중에도 외래어로 인한 소통과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어기본법」을 살펴보면,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한다.”(제14조 제1항)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 언어는 특히 국민의 눈높이와 처지에서 상대방을 배려하여 써야 합니다. 알기 쉽고 분명해야 하지요.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일수록 외래어를 되도록 줄이거나 우리말로 바꿔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쉼표, 마침표.>>

요즘에는 한류 열풍과 한국어 학습 열풍 소식을 자주 접합니다. 우리말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은 것 같습니다.

김주원

 한류 열풍과 더불어 우리 말글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고무될 만한 일입니다. 우리 가수들이 해외에서 공연을 할 때 외국어가 아니라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관련 통계에 따르면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세종학당 한국어 수강 대기자 또한 1만 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종학당재단은 해외에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보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케이 팝, 케이 드라마 등이 한류 열풍을 주도하면서 올해 270개소까지 늘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어 학습 열풍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머물지 않고, 꾸준히 이어 가기 위해서는 이처럼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필수적이에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우수한 한국어 교재를 펴내는 일도 중요하고요. 한류 열풍과 한국어를 매개로 세계인과 교감하는 일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국가적, 제도적으로 더욱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쉼표, 마침표.>>

올 한해 한글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이루고자 한글학회가 계획하거나, 진행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주원

 우리 학회는 기본적으로 우리 말글의 연구 활동과 실천 활동이 가장 핵심적인 활동입니다. 올해는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난 지 80년째가 되는 해인데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글날 기념 학술 학술대회에서 관련 연구를 주제로 발표 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학회 도서관에는 주시경 선생의 육필 원고, 『조선말 큰사전』 원고 등 귀중한 자료가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국가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자료 정리, 보존 처리, 복제 등의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연구에도 도움이 되고, 일반인에게도 자료를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한글학회에서 하던 활동을 지금은 한국어와 한글 관련 기관들이 함께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일일이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앞으로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이들 기관 단체와 협력하면서 우리 말글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쉼표, 마침표.>>

한글학회의 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실까요?

김주원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말글의 연구 활동과 실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합니다. 특히 아직 발굴되지 않은 옛 자료들을 찾아내는 일에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한글학회 관련 자료들, 예를 들어 학회에서 주최한 조선어강습원(한글배곧), 국어과 지도자 양성 강습회, 조선어 강습 관련 자료들, 각종 사진 자료 말이에요. 한글학회의 지난날 활동 하나하나가 겨레의 언어문화를 지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러한 노력 과정을 정밀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죠. 학회의 역사가 길고 유구한 만큼 지난 옛 자료들이 음지 속에서 잊혀 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저희 학회가 발행하고 있는 월간 『한글새소식』에 관련 소식을 꾸준히 실어서 제보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서도 동참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웃음)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통해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본래의 가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글/사진: 강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