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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교육, 그리고 우리
  • 주어를 말하지 않는 사람들

  • 이미향(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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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몇십 년 된 일이다. 외국으로 가는 자유여행이 흔하지 않던 시절, 단체 여행을 간 한국인들이 미국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서 전설 같은 일화를 남겼다. 자리를 잡고 앉은 한국인들에게 직원들이 주문을 받으러 갔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메뉴를 통일하고 정리하여 직원에게 알려 준 것이 하나요, 어떤 이들은 ‘I am a steak.(나는 스테이크이다.)’라고 말하며 주문했다는 점이 또 하나이다. 이 특별한 언행에, 그 식당에서는 한동안 ‘한국인들은 주문할 음식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오해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가: “우리 뭐 먹을까?”
나: “나는 비빔밥. 이 집은 비빔밥이 맛있어.”
가: “그래? 그럼 나도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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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비빔밥’, ‘나는 짜장면’과 같은 말은 한국의 식당에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릴 정도로 흔한 말이다. 한국말은 상황과 맥락을 중시하는 말이라, 서로 마주 보는 상황에서는 눈앞에 있는 사람의 동작을 생략해도 말이 된다. 아무리 생략을 해도 주문 직전, 음식을 고르는 상황에서 이를 못 알아듣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오늘 비빔밥을 먹을 거야. 너는 오늘 뭐를 먹을 거야?’라 하면 더 어색하게 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도 이 말은 참 독특하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먹는 행위를 할 주체가 먹을 음식과 하나라는 뜻이다. 사실 ‘말이 안 되는 말’이 아닌가? 식당에서 자주 보는 ‘물은 셀프서비스입니다.’도 이와 같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말 아래에는 종종 ‘Water is Self-Service.’라 번역하여 적혀 있다는 것이며, 대부분은 이 영어 표현까지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말이란 문법이나 어휘 사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인지 등은 언어별로 다르다. 주어와 행위의 논리성을 말할 기준은 여러 가지인 셈이다.

 이런 특징으로 한국어 입말에는 종종 주어가 없다. ‘어디 가요?’, ‘학교 가요.’, ‘그럼 같이 가요.’와 같이 연속된 말이 한국어 교재에 등장할 근거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어 입말이 교재 대화문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던 때도 있었다. 주어나 조사가 생략된 문장에 대한 염려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때로는 주요 성분이 생략된 문장은 배울 가치가 없다는 맹렬한 비난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이제는 한국어교육에서 입말의 가치에 대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학습자들의 요구에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사용역이 달라 추구하는 형식도 다르다. 말을 배우려는 학습자에게 완벽한 문장만이 배울 가치가 있는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주어 없이 쓰는 사람들은 가치 없는 말을 하는 것인가?

 물론 여전히 가르치기에 어렵거나 조심스러운 표현은 많다. ‘곧 갈게요’와 ‘곧 갈 거예요’를 들으면서, ‘곧 갈’ 주체가 그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를 주어가 생략된 채 알아내야 한다. ‘냉면은 이 집이 잘해요’와 같은 이중주어문에서는 주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주어인지 말해 주기가 어렵다. 어떤 학습자는 ‘우리 할아버지는 키가 커요’에서 ‘커요, 크셔요’ 중 어떤 말을 써야 할지 판단해 달라고도 한다. ‘크다’의 주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높임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한 학생이 문장 하나를 들고 와서는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문장인데, ‘여행 다녀왔다니까 재미있었냐고 해서, 재미있었다니까 정말 부러워하더군요.’라고 적혀 있었다. 과연 누가 여행을 갔고, 이 말을 누가 물었고, 부러워하는 이는 누구인가? 무엇보다도 이런 복잡한 상황을 한국인들은 어떻게 알고 넘어 가느냐고 묻는 학습자의 얼굴에는 한국어 학습에 대한 좌절마저 보였다. 그래도 이 학습자는 중급의 문턱을 무사히 넘어 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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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와 문화가 담긴 이런 표현은 한국어교육뿐만 아니라 통·번역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다뤄진다. 한국말 ‘나는 비빔밥’을 통·번역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에서 무척 중요한 교육 내용으로 다루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런 말을 곧 한국의 언어문화를 담은 표현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표현으로 보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를 다루지 않고, 때로는 글자에 없는 의미로 말을 맞바꾸지 않는 통·번역의 일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중요하게 보고 본격적으로 가르친다. 문화적으로 맞는 표현이란 언어와 문화권에 따라 달라, 문화권별로 차이가 있는 말에 대해서는 이해도 표현도 어렵다. 이러한 점은 문화 속에서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할 말을 배울 한국어 학습자에게도 같다. 한국어 교육에서 ‘적절한 문장’을 문법의 적절성으로만 판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르칠 내용과 방법에 대한 고민, 한국어 교육을 하는 우리는 여전히 많은 숙제를 풀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