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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궁금한우리말

맛의 말, 말의 맛

갖은 양념의 말들

  조미료(調味料),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슬픈 말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맛을 조절하는 재료’이니 딱히 배척할 이유가 없다.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결국 모든 재료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니 각각의 맛을 조절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소금을 필두로 갖가지 재료들로 맛을 내어 왔는데 그 모든 것이 조미료이니 그 연원도 퍽이나 오래되었다. 문제는 인공으로 만들어 낸 ‘인공 조미료’, 특히 화학의 힘을 빌려 만들어 낸 ‘화학 조미료’이다. 이것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그 해악에 대한 말들이 많으니 ‘인공’과 ‘화학’을 뗀 ‘조미료’마저 도매금으로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맛을 만드는 첫 번째 재료는 역시 소금이다. 소금 속의 여러 성분은 우리 몸의 대사를 조절하는 데 필수적이다. 소금은 짠맛을 내기 위한 것이지만 짠맛이 가장 기본이 되기에 ‘간’을 맞추기 위한 것이 바로 소금이다. 간을 맞추는 것이 단순히 소금의 양을 조절하는 것을 넘어서 음식 맛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쓰이고 있으니 ‘간’만으로도 소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짜다’가 사람에게 쓰이면 ‘인색하다’의 뜻이 된다. 반찬이 짜면 적은 양으로도 많은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이런 용법이 생긴 것을 수도 있으나 증거는 없다. ‘밥’과 마찬가지로 소금도 예나 지금이나 변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옛 문헌이나 방언에 ‘소곰’이 나타나기는 소리가 살짝 바뀐 것일 뿐 결국은 같은 단어다.

  단맛도 우리 몸에서 간절히 원하는 맛인데 단맛을 내는 재료는 여럿이다. 당분은 에너지로 바꾸기에 가장 쉬운 것이기도 하고 음식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맛이기도 하다. 과일과 꿀 등에서 단맛을 느낄 수도 있고, 엿이나 설탕처럼 자연 재료를 가공하고 응축해서 단맛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단맛의 반대인 쓴맛은 따로 내려고 하지 않는다. 단맛을 좋아하는 만큼 쓴맛을 싫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야 맛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료 자체에 포함된 쓴맛이 오히려 고급스러운 맛을 내기도 하기 때문에 재료에서 나는 쓴맛을 억지로 지우지 않으면 즐길 수 있는 맛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 고진감래(苦盡甘來)’ 등의 한자 성어에서,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에서 단맛에 대한 열망도 느낄 수 있지만 쓴맛의 필요성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신맛은 재료 자체에서 나기도 하고 재료를 발효시켜 만들기도 한다. 덜 익은 과일 맛을 비롯해 각종 식재료에 신맛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솝 우화의 ‘신포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바라거나 즐기는 맛은 아니다. 위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몹시 힘들 때 ‘신물이 나다’란 표현을 쓰기도 하니 역시 좋은 맛은 아니다. 그러나 곡물이나 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식초는 음식의 풍미를 더하는 데 한몫을 한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는 ‘향신료(香辛料)’도 한 몫을 한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기가 막힌 이름이다. 말 그대로 ‘향기롭고(香, 향기 향) 매운(辛, 매울 신) 재료를 따로 분류해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런 재료들은 네 가지 기본적인 맛도 가지고 있지만 코를 자극하고 입안의 점막을 자극하는 재료다. 우리는 향신료를 특별히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 말 자체가 낯설기는 하다. 그러나 유럽이 밖으로 눈을 돌린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 향신료였고, 중국을 비롯한 더운 지역의 음식에서 향신료가 빠질 수 없는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중에 매운 맛에 집착을 한다. 매운맛은 통증의 하나이기 때문에 ‘맵다’는 말은 심한 고생이나 사나운 기운 등을 뜻한다. ‘신랄하다’에서 ‘신(辛)’과 ‘랄(辣)’은 둘 다 맵다는 말인데, 말이 매우 매섭고 혹독할 때 쓴다. 그러나 통증은 의외로 입맛을 자극해 은근히 중독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것은 오로지 매운 맛으로 승부하겠다며 이름 앞에 ‘辛’만 달랑 붙인 라면이 최고의 인기 품목이 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고추 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처럼 삶에서 더 매운 것이 있으니 매운 맛의 고통이 덜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유어 ‘양념’은 조미료나 향신료를 아우르는 말로 쓰인다. 네 가지 기본적인 맛을 내는 재료든, 향과 매운 맛을 더해 주는 재료든 음식을 조리할 때 맛을 내기 위해 쓰는 모든 재료를 양념이라 한다. 영어로는 spice, seasoning, condiment 등으로 부르는 것도 우리말에서는 ‘양념’ 하나로 통틀어 부를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은 말이다. ‘양념’의 어원을 따로 밝히기는 어렵다. 한자로 ‘약념(藥念)’이라고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약념’의 발음도 결국은 [양념]이 되고 ‘약을 생각한다.’ 혹은 ‘약으로 생각한다.’의 뜻이니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영어의 ‘spice’에도 ‘약(藥)’이란 뜻이 들어 있고, 일본어에서도 양념을 ‘야쿠미(薬味, やくみ)’라고도 하니 관련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藥念’의 단어 구성이나 뜻이 자연스럽지 않으므로 한자와 관련짓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갖은 양념’이라고 하면 그 폭이 훨씬 더 넓어진다. ‘갖은 양념을 넣고 나물을 무친다.’라고 하면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가지고 있는 모든 양념’인 ‘가진 양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갖은 고생, 갖은 노력’ 등을 생각해 보면 전혀 엉뚱한 해석이다. ‘갖은’은 ‘골고루 다 갖춘 또는 여러 가지’의 뜻으로 쓰인다. 그러니 ‘갖은 양념을 하다’는 맛의 균형이 맞도록 여러 가지 양념을 골고루 하는 것을 뜻한다. 양념은 ‘넣다, 치다, 뿌리다’ 등을 쓸 수 있지만 ‘하다’를 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레시피’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갖은 양념’은 참으로 애매한 말이다. ‘레시피’는 우리말로 ‘조리법’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데 우리의 전통적인 조리법과는 접근 방법이 다르다. 서양식의 레시피에는 재료와 양념을 무게, 양 등으로 세세하게 나타내지만 우리의 조리법에서는 ‘적당량’에 ‘갖은 양념’을 하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표준화된 음식을 만들고, 누구나 기계적으로 따라할 수 있는 조리법을 알리는 데 레시피는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음식은 화학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갖은 양념을 감으로 조절해 최선의 맛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레시피보다 오랜 경험과 정성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갖은 양념’은 ‘균형’과 ‘조화’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갖은 양념’은 가지고 있는 온갖 양념을 양껏 쓰라는 의미가 아니다. 음식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 내기 위해 재료와 양념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양념끼리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양념이 과한 음식은 재료가 맛이 없거나 만드는 이의 솜씨가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갖은 양념이 사용되었더라도 양념의 맛이 튀지 않아야 참맛이라 할 수 있다. ‘양념’은 ‘흥이나 재미를 돕기 위하여 덧붙이는 재료’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일상에서 흥이나 재미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삶의 균형이 깨어진다. 양념도 마찬가지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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