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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궁금한우리말

맛의 말, 말의 맛

폭탄주와 칵테일의 사이

  ‘음식’은 한자로 ‘飮食(마실 음, 먹을 식)’이라고 쓰니 본래 마시고 먹는 동작을 뜻하지만 요즘은 마시고 먹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먹다’가 포괄적인 의미라면 ‘마시다’는 ‘먹다’에서 분화되어 좀 더 구체적인 의미로 쓰인다. 즉 물이나 술 따위의 액체를 목구멍으로 넘기는 행위가 ‘마시다’인 것이다. 마실 것의 바탕은 ‘물’이지만 오로지 이 물에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녹아들 수 있다. 물에 알코올이 섞여 있으면 ‘술’이 되고 달콤한 무엇이 섞여 있으면 ‘음료’가 된다. 식물의 잎이나 열매를 가공해 물로 우려내 마시면 ‘차’가 되고, 다른 동물의 ‘젖’을 빼앗아 사람이 먹는 것은 ‘우유’로 통칭된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종류가 무엇이든 ‘마실 것’은 ‘먹을 것’의 일부이지만 근원이기도 하다.

물잔, 술잔, 찻잔, 우유잔

  ‘마실 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수없이 많으나 이 말은 은근슬쩍 ‘술’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성경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는 구절을 보고도 밥과 술을 생각하는 이가 많다. 각자의 경험과 취향에 따라 막걸리, 소주, 맥주, 포도주, 양주 등을 떠올릴 텐데 이들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꽤나 흥미롭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빚은 술을 거르는 방법을 따라 지어진 것이고, 소주라는 이름은 빚은 술을 증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맥주와 포도주는 술을 빚는 주재료에 따라 지어진 이름인데, 양주는 엉뚱하게도 물을 건너온 술 중 일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와인잔, 포도주

  가리키는 대상은 같은데 ‘와인’과 ‘포도주’는 묘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포도를 주원료로 하여 만드는 술이니 ‘포도주’는 극히 자연스러운 이름이다. 그런데 포도주의 본고향이라 인식되는 프랑스 말로는 와인이 아닌 ‘뱅(Vin)’인데 프랑스에서 비싸게 수입한 것은 왠지 ‘포도주’가 아닌 영어인 ‘와인(wine)’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소주나 막걸리가 ‘맘’이 맞는 사람들끼리 아무나 둘러앉아 같이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면 와인은 ‘격’이 맞는 사람들끼리 맛, 향, 색, 목 넘김, 어울리는 안주까지 논하며 우아하고 예의 바르게 마셔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데 와인을 성당이나 교회에의 성찬식에서는 포도주라고 부르지만, 일상에서 포도주라 하면 ‘과일주’로 격이 떨어진다.

다양한 양주들  와인만큼이나 흥미로운 의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술이 있으니 ‘양주’가 그것이다. 어떤 말에 ‘양(洋)’이 붙으면 모두 물 건너온 것, 특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것을 뜻한다. 술 또한 마찬가지여서 ‘양주’는 기본적으로는 서양에서 온 술을 가리킨다. 그러나 서양에서 온 모든 술이 양주인 것은 아니다. 맥주나 포도주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 분명한데 양주 축에 끼지 못한다. 양주라 하면 도수가 높은 위스키, 브랜디, 럼, 진, 보드카 등의 증류주만 가리킨다. 이 중에도 일종의 등급이 있어 위스키나 브랜디가 ‘진짜 양주’로 꼽힌다.
폭탄주  그런데 이 양주가 테러의 재료가 되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진다.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폭탄주’가 그것이다. 도수가 낮은 술에 도수가 높은 술을 섞거나 잔째 넣어 마시는 것을 뜻하는 폭탄주는 제정 러시아의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맥주에 보드카를 섞어 마신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어로는 ‘밤 샷(bomb shot)’이라고 하고 각국에 다양한 방법과 이름의 폭탄주가 있는 것으로 보아 밖으로부터 들어온 술 문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1980년대에 검찰, 군, 경찰,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하여 마치 우리의 고유한 술 문화인 양 광범위하고도 깊게 자리를 잡게 된다. 더욱이 상명하복이 중시되는 조직에서부터 퍼져 나가다 보니 일종의 폭력성까지 더해지게 된다.
다양한 칵테일  술에 다른 무언가를 섞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독한 술에 물을 타서 희석하여 먹는 것, 충분한 양의 얼음을 넣어 차게 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묽게 하여 먹는 것은 마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마시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여러 술과 향과 맛을 더하기 위해 다른 재료를 섞는 칵테일은 마시는 사람을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식의 폭탄주는 만드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한꺼번에 빨리 취하게 해서 얻는 소득이 무엇이든, 폭탄주는 ‘제조’해 돌리는 사람이나 ‘하사’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각자의 주량이 있고 사람마다 간의 해독 능력이 다른데 모두가 똑같은 양을 한꺼번에 먹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폭탄주 제조 모습  양주와 맥주를 섞는 것은 그저 ‘폭탄주’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소주와 맥주를 섞는 것은 ‘소맥’, 나아가 ‘쏘맥’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두 가지 술 이름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니 자연스러운 우리말 조어법을 따른 것이긴 하다. 오늘날의 소주는 그리 독한 술이 아니니 소맥을 폭탄주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는 한다. 또한 소주가 그리 비싼 술도 아니니 그렇게 마셔 없앤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칵테일은 ‘정성껏 만들어 바치는 술’이고, 폭탄주는 ‘거칠게 만들어 하사하는 술’이다. 칵테일은 마시는 사람을 위한 술이고, 폭탄주는 돌리는 사람을 위한 술이기도 하다. 그나마 ‘쏘맥’은 그 중간에 있는 듯해서 조금 위안이 되기도 한다.

  다만 각각의 술마다 고유한 맛과 향이 있는데 그것을 뒤섞는 것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백 세’까지 오래오래 살라고 여러 약재를 넣어 술을 빚었더니 소주와 반반 섞어서 ‘오십 세’까지만 살라며 상대에게 술을 권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술이 ‘음식’의 하나임을 생각해 보면 폭탄주나 칵테일은 비빔밥과도 같은 술이다. 비빔밥은 아주 가끔씩 먹어야 맛있다. 비벼 먹으면 평소보다 많은 양을 먹으니 배가 더부룩하다. 술도 이것저것 섞어 마시면 당연히 많이 마시게 된다. 차 수와 술 종류를 바꾸어 가며 긴 시간 동안 많이 마셔 대고는 섞어 마시면 더 취한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가리지 않고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가며 건강을 해치는 이들에게 우리의 유행가는 또렷하게 한 구절을 들려준다.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나훈아, <머나먼 고향>

한 잔 또 한 잔을 마셔도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

사랑의 하모니, <별이여 사랑이여>

마시자. 한 잔의 술, 마셔 버리자.

이장희, <한 잔의 추억>

이장희 노래 앨범 자켓

  시나 노래에 술이 들어가는 것은 오랜 전통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양은 대부분 ‘한 잔’이다. 모든 술이 한 잔부터 시작하지만 한 잔으로 끝나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한 잔’인 것은 이유가 있다. 술마다 잔의 크기가 다른 것은 그 양만큼 마실 때 가장 맛있고 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술’과 ‘잔’이 권하는 대로 ‘한 잔’하는 것이 술의 참맛을 즐기는 길이다. 갖가지 술을 욕심껏 한 잔에 쏟아붓는 것, 차 수를 바꿔 가면서 온갖 술을 위 속에 들이붓는 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음식’에서 ‘식(食)’을 너무 많이 해도 탈나고, ‘음(飮)’을 너무 많이 해도 탈난다. 특히 요즘처럼 ‘음’과 ‘식’의 대상이 넘쳐 나는 시대에는······.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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