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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말, 말의 맛

빈대떡 신사 엿 먹이기

돈 없으면 대폿집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한복남, <빈대떡 신사>

1940년대의 도미도 레코드의 인기곡

  음식 이름이 노랫말에 들어가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1940년대에 만들어진 이 노래에는 ‘빈대떡’이란 음식 이름이 명확하게 나오지만 사실 빈대떡을 찬양하는 노래는 아니다. 노래에서 빈대떡은 돈 없는 사람들이 대폿집에 가서 시켜 먹는 싸구려 안주로 그려지고 있다.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 노래 덕에 빈대떡이 더 알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노래에 등장하는 ‘빈대떡 신사’가 시인 백석이라는 설이 있다. 일제 강점기의 시인들에 대한 통념에 기대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한다. 주머니는 비어 있지만 머리와 가슴만은 부유한 이들이니 요릿집이나 기생집을 기웃거리는 시인들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양복쟁이’가 시인 백석이니 앞뒤가 맞을 것도 같다.

시인 백석  그러나 백석의 외모를 아는 이, 백석의 당시 인기를 아는 이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설이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백석의 이목구비나 머리 모양은 지금 당장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미남의 시인이자 영어 선생님이었으니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가늠이 된다. 돈이 없더라도 요릿집이나 기생집에서 서로 모시려고 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만 문전 박대를 당하는 장면은 그려지지가 않는다. 양복을 차려 입은 백석의 멋진 모습을 보고 그저 겉모습만 따라 하는 ‘건달’이 바로 이 노래에 나오는 ‘빈대떡 신사’라는 설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시인 백석이 ‘빈대떡 신사’인 양 잘못 알려지는 것 못지않게 ‘빈대떡’에 대해서도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빈대떡은 녹두를 갈아 몇 가지 소와 버무린 뒤 지져 내거나 부쳐 내는 음식이다. 그 맛이야 모두가 동의를 하지만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떡이 아닌데 떡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문제가 된다. 곡물의 가루를 내어 찐 것이 아니라 묽게 반죽을 해서 지져 냈는데 떡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하다. ‘떡’ 앞에 붙은 ‘빈대’도 정체를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의 피를 빠는 ‘빈대’일 리는 없으니 다른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옛 문헌을 보면 이 음식을 한자로 로 쓰고 한글로는 ‘빙쟈’로 써 놓은 것이 보인다. ‘餠(떡 병)’은 떡을 뜻하지만 우리 한자음으로는 ‘병’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빙’이다. 그러니 기록대로라면 이 음식과 이름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에서 ‘빙쟈’라 부르는 음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빈대떡이 됐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어에서 유래한 ‘빙쟈’가 무슨 말인지 모를 수 있으니 본래 ‘餠’이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떡’을 덧붙인 것은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러나 ‘쟈’가 ‘대’가 되는 일은 설명이 어려운 변화다.

빈대떡과 엿기름  이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만든 ‘빈자(貧者)떡’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제기된다. 그러나 그리 흔하지 않은 곡물인 녹두를 정성스럽게 갈아 갖가지 소를 넣은 뒤 기름에 지져 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이 음식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에는 돈이나 품이 너무 많이 들어 보인다. 게다가 ‘빈자’가 이전의 표기 ‘빙쟈’와 유시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빈대’가 되는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덕수궁 뒤에 ‘빈대골’이 있었는데 여기 사는 사람들이 부침개 장사를 많이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보인다. 이 설을 증명하려면 ‘빈대골’의 존재 여부도 확인해야 하고, 그 마을 사람들이 빈대떡을 만들어 팔았다는 증거도 있어야 하는데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모두 개연성이 떨어지는,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빈대떡 못지않게 엉뚱한 유래담이 떠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엿’과 관련된 관용 표현이다. 갖가지 곡물과 엿기름이 주원료인 엿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음식이다. 가장 묽은 상태의 조청은 음식을 조리할 때 넣어도 좋고 가래떡 같은 것을 찍어 먹기도 좋다. 이것을 더 졸여서 굳힌 것이 갱엿이다. 갱엿으로 굳기 전에 잡아 늘여 공기가 들어가게 하면 하얀색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을 엿판에 덩이째 굳혀서 떼어 팔기도 하고 가락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요즘이야 단맛을 내는 것들이 많아 엿의 인기가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끈끈하게 잘 붙는 속성 때문에 시험 철이 되면 떨어지지 말라는 뜻으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이처럼 인기가 높은 엿이 우리의 말 속에 들어가면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는데 그중 최고는 역시 ‘엿 먹어라’이다. 달콤한 엿을 먹으라고 하니 표면적인 뜻만 생각하면 좋은 의미일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상대에게 저주에 가깝게 퍼붓는 말이다. 달콤한 엿이 왜 이러한 표현에 쓰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엿 먹어라’의 발음은 [염머거라]이기 때문에 ‘엿 먹어라’가 아닌 본래 ‘염 먹어라’라는 설명도 있다. 이때의 ‘염’은 ‘시신을 염(殮)하다’의 ‘염’과 같은 뜻이라는 것인데 우리말에서 나타나는 말소리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좋지만 상상력이 너무 지나쳤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1964년의 중학교 입시 문제와 관련된 소동이다. 엿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묻는 문제에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의 답안이 오답 처리가 되자 학부모들이 실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교육위원회에 나타나 ‘(무즙으로 만든) 엿 먹어라’라고 한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신문에 기사까지 났으니 중학교 입시 문제와 관련된 소동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 역시 억지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소동이 일어난 것은 1964년인데 이미 1938년과 1954년 신문에 ‘엿 먹어라’라는 표현과 그 유래에 대한 설명이 확인된다.

무우즙으로만든 엿좀먹어보라고 서울시교욱위에 밀려든 자모들

  노래 <빈대떡 신사>에 시인 백석을 끌어들이는 것이나 ‘엿 먹어라’의 유래에 시신 혹은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람을 속이는 일이 되기도 한다. 어원에 설명 중 많은 것들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한자나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키려는 무리한 시도들이 그렇다. 이러한 설명은 백석과 빈대떡 모두를 ‘엿 먹이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가 재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멋쟁이 백석은 무전취식하는 건달이 되고,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 된다. ‘엿’이 들어간 표현 중에 유쾌한 것도 있으니 ‘엿 장수 마음대로’가 그것이다. 말 그대로 정해진 가격과 양이 없이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빈대떡 신사와 ‘엿 먹어라’에 대한 설명을 엿장수 마음대로 하는 것은 문제다. 누가 처음 엿을 만들었는지 모르듯이 누가 처음 ‘엿 먹어라’라는 말을 썼는지 모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말은 그렇게 생겨나서 그렇게 사라진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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