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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리말

‘한국수어’,
참 다정하고 친근한 언어

서울도서관 ‘한국수어 문화학교’ 교실 풍경

  일상을 탈피하여 떠나는 해외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낯선 곳에서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귀에 익은 한국어를 들을 때의 안도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어를 듣고, 한국어로 말하고 그야말로 온통 한국어인 곳, 천국이 따로 없다. 이렇듯 한국어는 한국 사람에게 공기와 같이 꼭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수어’로 소통하는 ‘농인’1)이 바로 그들이다. 태어나면서 끊임없이 한국어를 소리로 자극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습득하고, 소리 문자인 한글로 기록된 다양한 자료를 통해 지식을 넓히지만, 듣지 못하는 농인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청인2)에게도 한국수어는 낯선 언어이다. 제대로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농인과 한국수어에 대한 오해도 많다. 이를테면 수어를 의사소통의 보조 수단쯤으로 여긴다거나, 농인이 말은 들을 수 없더라도 한글은 알아 한글로 의사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들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수어가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임을 널리 알린 ‘한국수화언어법(2016. 2. 3. 제정)’은 이런 여러 오해를 없애고 ‘한국수어’가 ‘한국어’와는 별개로 또 하나의 언어임을 밝히고자 만든 법령이다.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한국수어는 대한민국에서 언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까?

서울도서관에서 진행한 ‘수어, 도서관에서 꽃 피다’의 수업 현장| 서울도서관에서 진행한 ‘수어, 도서관에서 꽃 피다’의 수업 현장

  좀 더 많은 사람이 수어를 알고 농인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지난해부터 ‘한국수어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수어, 도서관에서 꽃 피다(7월 18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8시30분)’라는 주제의 수어 강의가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개설 하루 만에 수강 신청이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얻었다. ‘수어, 도서관에서 꽃 피다’는 청인 강사와 농인 강사가 짝을 이루어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으로, 단순히 수어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청인 수강생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농인의 문화까지 함께 배울 수 있어 수강생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6월 3일 농아인의 날을 맞아 만나 본 ‘한국수어 문화학교’ 수강생들의 수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수강생양희라
  “작년 속기 봉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농인 친구를 만났어요.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서 소통하는데 밖에서 만날 땐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며 걷다 보니 걷는 데에 방해도 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불편함들이 느껴지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제가 수화를 할 줄 알면 정말 좋겠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2017년 겨울 촛불집회에서의 수어 통역을 보며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제가 본 수어는 단순한 의미의 전달을 넘어 온몸을 통해 보여 주는 춤과 같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수강생 김소라
| 수강생 김소라
  한국수어 문화학교의 강의에서는 언어로서의 수어뿐만 아니라 농문화에 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 모름지기 언어란 발화 주체들의 문화를 담기 마련이다. 수어를 배우며 그들은 농인과 농문화에 대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수강생김소라
  “농인들은 훌륭한 경청가인 것 같습니다. 귀가 아닌 눈빛으로 집중하여 상대방의 말을 들어 주는 모습은 청인들의 경청과는 다른,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존중으로 느껴졌습니다.”

수강생박이슬
  “최근 수업에서 농인이 농인을 부를 때의 방법을 배웠습니다. 손을 흔들거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부르는 것은 이미 예상한 것이었는데, 전등을 껐다 켜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또 한국어 이름이 아닌 수어 이름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수어 이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에게 수어는 어떤 언어로 다가왔을까?

왼쪽부터 수강생 정유진, 수강생 박이슬
| 왼쪽부터 수강생 정유진, 수강생 박이슬
수강생정유진
  “수업 중에 표정에서 드러나는 비수지3)가 참 중요하다고 배웠을 때 청인들이 얼마나 표정 없이 대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리고 얼마든지 자신의 기분을 감추고 얘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수어는 참 정직한 언어이면서도 꼭 눈을 보고 대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 다정하고 친근한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수강생들은 수어를 배우며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농인, 농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한 깊이 있는 의견을 남겼다.

수강생김소라
  “서울의 상급 종합 병원 중에서 상근하는 수어 통역사가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라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중략) 그 기사를 본 후 든 생각은 ‘이러한 문제가 비단 의료계만의 것은 아닐 텐데…….’라는 걱정이었습니다. 법조계나 그 밖의 분야에서도 정말 절박할 때 농인들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은 잘 마련되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일상에서의 편리함을 제공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의 사회적 지원 시스템, 특히 공적인 시스템이 잘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강사 김태욱, 강사 정원갑| 왼쪽부터 강사 김태욱, 강사 정원갑

  한편 한국수어 문화학교 강사들은 수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농인과 청인 사이에 언어적·문화적 간극이 크다는 걸 매번 실감한다고 했다. 수업을 통해 수강생들에게 가장 알려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강사김태욱
  “청인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에는 말투와 억양 등을 통해 말에 감정이나 분위기를 담습니다. 수어에서는 비수지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제가 가장 가르치고 싶은 것입니다. 수강생들이 비수지라는 수어의 중요한 요소를 익힐 수 있도록 수업 중에 다양한 게임을 통해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사정원갑
  “언어는 문화를 담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그릇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처럼 수어라는 그릇이 한국어와는 다른 풍미가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습니다.”

1)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
2) 청력이 건강하여 잘 들을 수 있는 사람
3) 손동작을 제외한 표정이나 몸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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