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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빵 궁금한우리말

맛의 말, 말의 맛

식빵과 호빵의 국적

  빵이 우리의 식생활에 어느 정도까지 자리를 잡았는지 보려면 식탁과 거리를 보면 된다. ‘밥상’이 아닌 ‘식탁’에 빵이 얼마나 자주 오르는가를 보면 되고, 거리에 ‘밥집’이 아닌 ‘빵집’이 얼마나 많이 눈에 띄는가를 보면 된다. 바쁜 아침 시간에 밥 대신 빵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거리마다 제과점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 속에 빵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이러한 면을 확인할 수가 있다. 포르투갈을 떠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말인 ‘빵’에서 외래어의 느낌이 사라졌다면, 그리고 ‘빵’이 우리말과 자유롭게 결합되어 쓰인다면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일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식빵, 찐빵, 술빵, 호빵 등 ‘빵’이 결합된 단어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빵’이 더 이상 겉도는 외래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빵’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빵의 본고장에서는 이 빵을 부르는 말이 따로 없어서 그저 ‘덩어리 빵’ 정도의 일반적인 표현을 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빵에 따로 이름을 붙이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사 먹기도 한다. ‘식빵’은 한자가 결합된 ‘食빵’일 텐데 말 그대로 풀자면 ‘먹는 빵’ 혹은 ‘먹을 빵’ 정도의 의미이다. 외래어 ‘빵’에 한자 ‘食(먹을 식)’이 붙은 것도 이상하지만 빵은 당연히 먹으려고 만든 것이니 그 의미도 이상하다. 이 말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일본어 ‘쇼쿠판(食パン)’과 만나게 되고,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슈쇼쿠판(主食パン)’ 혹은 ‘혼쇼쿠판(本食パン)’과 만나게 된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빵이 그저 간식거리나 별미가 아닌 한 끼를 책임질 만한 음식으로 격상된 것이다.

빵   ‘주식빵’과 ‘본식빵’에서 앞머리가 잘려 나간 ‘식빵’은 아무래도 어색한 조합인데 별 저항 없이 우리말 속에 들어온 것은 우리 삶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식빵’을 ‘먹는 빵’이나 ‘먹을 빵’이 아니라 ‘밥빵’으로 해석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옛사람들의 어휘 목록에서는 ‘밥’과 ‘빵’이 마치 반대말처럼 자리를 잡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밥빵’이란 말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조합이 된 것이다. ‘밥 대신 먹는 빵’을 넘어 ‘밥으로 먹는 빵’이 익숙해지면 ‘식빵’이든 ‘밥빵’이든 그리 어색한 말은 아닌 것이다. 이 빵과 말이 우리 땅에 들어올 때 이렇듯 복잡하게 따져 본 사람들은 없겠지만 삶과 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변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빵   ‘찐빵’은 또 어떤가?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지만 빵의 본고장 사람들이 보기에는 만드는 방법이나 이름 모두가 해괴망측한 것일 수 있다. 빵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구워서 만든다는 것이다. 빵집을 뜻하는 말이 ‘굽다’는 말에서 유래한 ‘베이커리(Bakery)’라는 것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화덕에서 노릇하게 구워져야 할 것이 솥에서 하얗게 쪄진 뒤 ‘빵’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것이다. 그것도 ‘찌다’에서 유래한 ‘찐빵’이란 이름을 버젓이 내밀며 스스로 가짜 빵임을 당당히 인정하고 있다. ‘떡’이 되어야 할 것이 밀가루로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빵’이 된 것이다.
빵   서양 사람에게는 찐빵 속에 가득 들어 있는 팥소도 낯설기 그지없다. 빵 속에 무엇인가를 채운 뒤 굽는 것은 단팥빵이 원조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시도된 이 방법은 중국의 전병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빵이 동양에 전해진 후 동양의 조리법과 결합되어 색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팥소를 채운 뒤 구워 낸 것이 단팥빵이라면 쪄 낸 것이 찐빵이다. ‘찐빵’이라는 말이 안 되는 이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빵이 이 땅에 들어와 기존의 음식 문화와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음식과 말 모두가 낯선 것일지는 몰라도 조리법과 말이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음식이자 말이 되었다.

  ‘술빵’은 찐빵만큼이나 빵이 우리의 삶과 말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단팥빵이 안에 넣는 소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면, 술빵은 밀가루를 부풀리는 방법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효모 대신 막걸리를 넣어 부풀리다 보니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빵을 발효시키는 효모의 발전 과정에서 맥주 양조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술을 활용해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식의 빵을 만들고 ‘술빵’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맥주를 ‘액체 빵’이라고 하기도 하고 막걸리를 ‘액체 밥’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묘한 평행 이론이 성립되기도 한다. 빵과 술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액체 밥’인 막걸리 덕에 우리만의 ‘액체 밥빵’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빵이 아닌 빵인 찐빵은 또 한 번의 변신 과정을 겪게 된다. 구운 빵은 ‘빵집’에서 팔리고, 쪄서 익힌 빵은 ‘분식집’에서 팔리는데 누군가는 가게에서 팔리는 찐빵을 고안하게 된다. 이미 대량으로 빵을 만들어 동네의 구멍가게를 통해 유통시킨 경험이 있는 ‘빵 공장’ 사장의 아이디어다. 이 빵은 김이 모락모락 나야 제 맛인데 가공된 흰색 빵과 함께 간편하게 빵을 쪄서 팔 수 있게 만든 기구를 함께 보급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빵집과 분식집에 비하면 숫자가 엄청난 구멍가게마다 이 빵을 팔게 되니 따끈한 찐빵을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빵의 이름이다. 가게에서 팔린다는 것을 빼면 찐빵과 같은데 ‘호빵’이란 이름을 달고 출시된 것이다. 사물의 이름 앞에 붙은 ‘호’는 한자로는 ‘胡(오랑캐 호)’라 쓰는데 대개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들을 가리킨다. 우리의 전통 옷에는 주머니가 없었으나 중국옷에는 있었으니 옷에 있는 주머니를 ‘호주머니’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먹거리와 관계된 것 중 ‘호파, 호밀, 호떡’ 등도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호빵’도 당연히 이런 단어들과 뿌리가 같을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에서도 안에 소를 채워 쪄 낸 빵을 많이 먹으니 그것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빵의 기원이나 이름은 중국과 관련이 없다. 이미 찐빵이 있었으니 굳이 중국의 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이 빵을 개발한 이는 뜨거우니 ‘호호 불어서 먹는 빵’이란 의미로 ‘호빵’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호빵’은 지극히 새로운 조어법에 의한 말이다. ‘호호 불어서 먹는 빵’에서 가운데 말은 모두 잘라 내어 ‘호빵’을 만드는 것은 우리말에는 없었던 조어법이다. 오늘날 수없이 지적받고 있는 줄임말의 먼 조상인 셈이다. 포르투갈을 떠나 일본을 거쳐 들어온 ‘빵’이 우리말에는 없던 조어법까지 어우러지며 ‘호빵’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은 ‘빵’이 우리말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음을 말해 주기도 한다.

  어법에 비추어 보면 ‘식빵’과 ‘호빵’은 부자연스러운 말이다. 조리법에 따르면 ‘찐빵’과 ‘술빵’은 우스꽝스러운 음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음식은 어법과 조리법을 뛰어넘는다. 빵이 밥을 대신하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은 때가 되었으니 ‘식빵’이 ‘밥빵’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빵을 반으로 갈라 달콤한 팥소와 함께 먹으면 맛있기만 하니 그것이 빵의 본래 모습과 다르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문득 묻게 된다. 빵의 국적은? 식빵과 호빵의 국적은? 기원을 따지고 어원과 어법을 따지면 할 수 있는 말, 해야 할 말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우리의 음식이고 우리의 말이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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