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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쉼표, 마침표.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놀라운우리말

국어 교실에서

너 때문에
이번 학기 즐거웠어요!

김민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은 안 나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국어’라는 과목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해 왔던 나의 말을 분류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어법의 체계였다. 그전까지 가족들과 말하고 친구들과 떠들어 대면서도 이토록 복잡한 체계가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한국어 교사가 되었을 때 이 경어법에 대한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물론 학교 문법처럼 그렇게 여러 체계를 나누어서 가르칠 필요도 없었지만, 그것이 더 문제였다.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고 가장 실제적인 경어를 가르쳐야 했다.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가서 만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최대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문장의 주체가 되는 사람, 행동의 상대가 되는 사람 등 고려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교사는 계속 한국 사회에서는 높임말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니 얼마나 힘들까? 그런데 가장 큰 어려움은 이 대부분의 것들이 초급 단계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생존 상황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보니 교수 단계가 조금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교사는 자연스럽게 최대한 쉽고 간단하며 가장 필요한 것들만 선정해서 가르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교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재미있는 실수를 하고는 한다. 가장 낮은 단계인 1급 학생들은 오히려 실수가 적다. 아직 반말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급 학생들의 경우에는 모국어나 자기 나라 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된 실수를 많이 한다. 중국어의 긍정 대답 중 ‘嗯[엉]’이라는 표현이 있다. 윗사람의 말에 대한 대답이더라도 구어 상황에서는 사용할 수 있고 한국어 ‘응’ 발음과 비슷해 중국 학생들은 종종 나의 질문에 “응. 응.”이라고 대답하고는 한다. 2급 과정을 배우면서부터 학생들에게 혼란이 찾아온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센터에서는 2급 과정에서 반말을 배운다. 그전까지 실컷 ‘-아요/-어요’, ‘-습니다’로 말하는 연습을 해 온 학생들에게 오늘부터는 반말을 사용해 보라고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재미있어하기도 하면서 반 친구들에게 반말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미 너무나도 ‘예의 바른 사람’이 되어 있는 학생들에게는 ‘요’를 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반말이 더 쉬울 거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학생들은 ‘어려운’ 반말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은 ‘요’를 빼면 반말이 된다는 것을 확장하여 ‘가세요’를 ‘가세’로 바꿔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명령문이 순식간에 청유문이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실수는 “노래방에 가자.”와 같은 청유문이다. 보통 ‘해요체’를 쓰는 경우, “우리 노래방에 가요.”와 같이 쓰지만 학생들에게는 이 문장이 평서문인 “우리는 노래방에 가요.”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자’가 청유의 ‘-아요/-어요’보다 뭔가 요청과 제안의 느낌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지 이상하게 다른 반말과는 달리 존댓말 사이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래서 종종 학생들에게 느닷없는 반말 공격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이 “선생님도 노래하는 거 좋아해요? 저도 좋아해요. 그럼 우리 노래방에 가자!”라고 하면, 나는 “응, 좋아. 같이 가자.”라며 똑같이 반말로 짓궂은 복수를 한다.
한국어 편지 또 하나는 2인칭 대명사 ‘너’이다. 2인칭 대명사가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있다가 반말을 배우면서 ‘너’를 접하면 그때부터 학생들은 반말이고 존댓말이고 할 거 없이 ‘너’를 쓰고 싶어 한다. 마땅한 대명사가 없으니 상대방에 대해 말하려면 이름도 물어야 하지, 나이도 물어야 하지, 그동안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또 예상치 못하게 학생들의 반말 공격을 당하게 된다. “선생님, 너 때문에 이번 학기 즐거웠어요!”

사실 한국어의 경어법 사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지위 고하가 아니라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일 것이다. 이것을 전달하는 것이 실은 가장 힘든 부분이다. 반말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평소 친하게 지내지도 않던 급우들에게까지 반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인 나는 어색함을 감출 수가 없다. 한국어에 담긴 사회·문화적인 부분까지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언어와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언어와 사고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한국어를 처음 가르치는 나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학생들이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았다. 말을 못한다고 생각도 어린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성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크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매 학기 가는 현장 학습의 하나로 이천 도자기마을 체험 활동을 가는 날이었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근처 예술대학에 초청받아 오신 외국인 교수님들이 계셨다. 그 대학은 한국 굴지의 예술대학으로 당시 아시아 예술가들을 초청해 특강도 열고 교류도 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일부로 한국어 수업이 있었는데 근처에 있는 우리 학교의 센터가 그것을 맡았던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화가 교수님들께서 짧은 기간 동안 한국어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쓰고 하는 광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그저 매일 4시간의 수업을 편안하게 허허 웃으며 듣다가 가시곤 했다. 당연히 교수님들의 한국어 실력은 늘지 않았고 나는 교수님들의 다소 어설픈 한국어를 들으며 그들이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도자기 만들기 체험 활동을 하던 중 교수님들이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밖에 나가서 쉬고 계시는 것이었다. 혈기 넘치는 신입이었던 나는 4살 아이에게 하듯이 두 분을 타일렀다. “왜 안 만들어요? 만들어요. 재미있어요.” 그러자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가방에서 작품집을 꺼내서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 작품집의 작가 이력 칸에는 비엔날레 출품과 수상 내역이 수도 없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그런 거장들이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하지 않는다고 꾸중을 들었으니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날 이후로 나는 학생들이 어설픈 한국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을 ‘귀여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 보면 한국어 교실이라는 곳은 언어만이 오고 가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문화 등을 전달하고 또 그들로부터 그들의 세상을 전달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쌓아 가는 곳이 한국어 교실이다. 꼭 언어가 아니어도 여러 수단으로 교감을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교실이 되기를 바라본다.

글_김민지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에서 11년째 근무 중인 한국어 강사이다. 오직 한길만 달려왔고 앞으로도 교실 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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